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비상선언: 재난 속에서 드러난 국가 시스템의 민낯

by ෆ리뷰ෆ 2025. 11. 25.

《비상선언》은 한국 재난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염병이라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불안 요소를 항공기라는 밀폐된 공간에 압축해서 보여주는데, 단순한 재난 블록버스터를 넘어서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국가 시스템의 취약함과 한계, 그리고 인간의 도덕성, 공포, 이기심과 연대의 갈등까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은 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영화 속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질 때, 개인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비상선언》은 이 질문을 끝까지 파고든다.

📌 목차

비상선언 항공기 내부 장면
▲ <비상선언> 속 폐쇄된 항공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공포와 갈등
1. 시스템 붕괴 속 리더십의 부재

《비상선언》의 핵심은 단순한 항공 재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위기 상황에서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항공기 안에서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관료들은 신속하게 결단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이건 실제 감염병 확산 초기에 행정 시스템이 혼란에 빠졌던 현실과 너무 닮아있어서 더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특히 영화 속 대통령과 내각, 보건 당국의 대응은 형식적이고 방어적이며,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있더라도 그게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항공기는 하늘을 맴돌고 있는데, 어느 나라도 착륙을 허용하지 않고, 결국 감염자들과 함께 고립되는 모습은 재난 앞에서 국가의 기능이 어떻게 마비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공항 근무자와 지상 관제탑 요원 등 일선 실무자들의 혼란과 고뇌도 함께 다루면서, 조직 내부의 갈등과 한계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주목할 점은 영화가 '정부의 무능'을 단순한 비판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개인들의 딜레마도 함께 조명한다는 거다. 담당자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고민하지만, 그게 조직이라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 시스템의 복잡성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영화는 리더십의 부재만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분산 구조 자체가 재난 대응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2. 감염 공포보다 무서운 이기주의

《비상선언》은 바이러스 자체보다, 그걸 둘러싼 인간의 반응을 더욱 깊이 파고든다. 감염자에 대한 공포는 곧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고, 한때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조차 서로를 배척하며 이기심과 생존 본능이 가장 우선되는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다.

기내의 승객들은 초반에는 협조적이지만, 감염 사실이 드러난 순간부터 분위기가 급변한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승객을 격리하자고 하고, 위험을 외부로부터 제거하려는 반응은 마치 감염병 초기에 확진자에 대한 낙인과 배제, 혐오가 만연했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 것 같았다. 여기서 영화는 인간의 공포심이 얼마나 빠르게 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리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편 지상에서는 각국 정부가 자국 보호를 이유로 항공기 착륙을 거부한다. 이 장면은 영화 속 가장 강한 상징이자 비판으로 작용한다. 인도주의, 국제 연대, 공공 책임이라는 말들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얼마나 무력한 이상론인지 보여주는 거다. 영화는 단순히 한 나라의 시스템이 아니라, 글로벌 시스템의 한계까지 짚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또한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이 비행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명확히 말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성 시험을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3. 재난 속 시민의식과 연대의 가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비상선언》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감염의 공포와 시스템의 실패 속에서도, 영화는 '연대'라는 주제를 다시 꺼내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명한다.

기내 승객 일부는 감염자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그들을 돌보고 이해하려는 선택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누군가는 안전보다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대를 택한다. 이건 단순히 휴머니즘적인 연출이 아니라, 공포 속에서도 시민의식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이다.

특히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승객 재혁은 딸이 감염자로 의심되면서 개인적 고뇌와 아버지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는다. 그는 아버지로서 딸을 구하고 싶지만, 다른 승객들의 안전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한편 송강호가 연기한 형사 인호는 아내가 탄 비행기가 테러를 당하면서 형사로서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공적 책임과 남편으로서 아내를 구해야 하는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들의 선택은 관객에게 많은 울림을 주며, 국가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의 윤리적 결단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작용한다.

결국 영화는 '완벽한 해결'보다 '인간다운 선택'에 더 주목한다. 시스템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정치적 결정은 뒤늦게 도착하더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연대는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걸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이야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상선언》은 단순한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문제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마치며

《비상선언》은 항공 재난이라는 장르적 외형 안에,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시스템의 허점, 인간 본성, 국가 리더십의 취약함,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까지 담아낸 복합적인 작품이다. 단순한 감상에서 벗어나 비판적 시선으로 접근한다면,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경험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